[RFA 초대석] 탈북화가 개인전 연 뉴욕 SB D 화랑 박설빈 대표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09-05
사진-SB D GALLERY 제공
뉴욕 SB D 화랑 박설빈 대표
미국의 최대도시 뉴욕의 한복판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로 알려진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에서 SB D Gallery즉 화랑을 운영하는 박설빈 대표. 1997년에 이 화랑을 세워 그동안 많은 미국인 화가들과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온 박 대표가 화랑 건립 14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 20일까지 탈북자 화가의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지 10년이 됐지만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고 선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탈북자는 한국과 해외의 전시회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북한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뉴욕 전시회에서도 북한사회의 폐쇄성과 지도자의 신격화를 형상한 그림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자유가 도래하길 희구하는 그림 12점이 전시돼 미국인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고 박설빈 대표는 설명합니다. 박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 탈북화가 전시회의 이모 저모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에스비디 화랑에서 탈북자인 선무 씨의 그림을 전시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박설빈 대표: 우리가 전시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 전에 한 번 인사이드노스코리아라는 제목의 북한전을 했었습니다. 미국 사진기자가 북한에 몇 차례 갔다 와서 2009년에 연 사진전시회였습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찍은 사진과 그림도 좋지만 북한에서 자란 사람이 전시회를 한다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분이 자신의 경험을 비주얼아트인 그림으로 표현해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이란 건 눈을 통해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니까요.
선무 화가는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합니다. 가족이 다 북한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평생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는 게 어릴 적부터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집권하고서는 김정일 초상화도 그리고 싶었다고 하시구요. 한국에서도 그림을 계속 그려 오셨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야 하지만 얼굴없이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밖에 알려지지 않아도 그림 자체가 바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고 또 자기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북한을 많이 알게되고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얼굴없는 활동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그림이 남북 통일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북에 있는 가족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분입니다.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전: 에스비디 갤러리에서 전시한 선무 씨 그림 중에 ‘조선의 예수’ ‘탈출’ ‘환희’ 같은 제목의 작품들이 있다고 하던데 이 그림들 내용이 어떤 것인지요?
박: 대표적인 작품을 예로 들면 ‘김정일’ 이란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전시회 시작한 날 팔렸는데 김정일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그 선글라스에 주민들의 피난가는 모습이 비춰져 있습니다. 목에는 금으로 된 목걸이를 걸었고 거기에 열쇠가 잠겨져 있습니다. 김정일 얼굴은 화장을 했고 립스틱이 발라져 있습니다. 선무작가 말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리는 한 달 동안 무서웠다고 합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 북에서는 화가들이 평생 영광으로 알고 그리고 싶은 주제의 그림인데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심는 것이니까요.
전: 그 그림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박: 결국은 배신감이겠죠. 작가님 말로는 김일성 때는 적어도 굶거나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으면 불평은 없잖아요. 그런데 김정일이 정권을 세습하고 나서는 여러 문제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런 점은 북한체제 안에 있을 때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북한 밖으로 나와 보니 자신이 속아 살아왔다는 걸 더 통감하게 된 것이죠. 너무 많은 북한주민들이 그걸 모르고 오히려 남한을 굶어 죽는 나라로 알고 김정일과 사회주의만 찬양하고 살고 있잖아요. 그런 걸 깨부시고 싶은 것이죠. 선무 화가 자신은 ‘탈북작가’란 말도 벗고 싶고 그냥 ‘예술가’이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작품에 프로파간다에 관한 주제나 정치적인 메세지가 없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무엇보다도 아직 북한에 계신 부모님이 북한체제 아래에서 고통 받고 있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자신의 가슴에 가장 큰 상처이기 때문에 자기 작품에 어떤 정치적인 메세지가 안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 이런 선무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미국인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박: 그분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것은 그림을 그리는데 제일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예로 김정은이 북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옷에 나이키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상표 나이키 말이죠? –
박: 네. 그래서 미국 관람객들이 왜 그걸 넣었냐고 물으면 선무 작가는 김정은이라도 사고방식이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걸 그려 넣었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전: 전시회에 김정은의 그림도 있었나요?
박: 네. 김정은과 김정일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머리를 한 김정일 그림이 있는데 북에서 김정일은 한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신격화돼 있으니까 그걸 빗대어 그린 것입니다.
또 디지털 영상으로 소개한 그림들도 있는데 갖난 아이를 앉고 있는 사람이 빨간 액체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그 아이의 심장에 꽂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건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주체사상)를 주입시키는 걸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무작가가 직접 나무조각에 북한의 슬로건, 구호를 새긴 것도 전시됐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일 아버지 보호아래 우리는 항상 행복합니다’ 같은 몸에 배어있는 구호들을 한국어로 새기고 그 아래 영어로도 써 넣은 것입니다. 현재 이런 작품도 계속하고 계신데 처음에는 왜 그런 걸 하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선무 작가는 그걸 하면서 많은 걸 느낀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작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걸 쓰면서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된 구호는 너무나 습관적으로 당연히 수용하고 살아 왔었는데 영어로 바꾸면서 그 말들을 되씹어 보게되면서 그 구호들이 너무도 말이 안되는 걸 느꼈다는 것이죠. 어릴 때부터 그런 구호를 입에 달고 자랐고 브레인워시를 당해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 그러니까 세뇌를 당해 구호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의심을 갖지 않는다는 얘기네요?
박: 네. 작가도 거기[북한]서 30년이나 살고 남한에 와서 10년이나 됐지만 구호들에 대해서는 항상 있었던 것정도로만 생각을 했는데 자신이 나무판에 직접 그 구호를 한 자 한 자 파면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고 또 영어로 옮겨 적으면서 이런 구호가 너무나 넌센스라는 것을 느끼신대요.
전: 선무씨 말고 달리 북한 작가나 탈북자 화가의 전시회를 기획해 볼 계획이 있습니까?
박: 기회가 된다면 탈북자가 아니더라도 전시회 내용이 좋고 사람들이 같이 나눌 수 있는 작품이라면 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회 때에 선무 작가가 뉴욕에 와서 닷새 동안 같이 생활하며 얘기를 나누고 뉴욕시내를 다니며 구상한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그걸 전시하는 일을 추진하고 싶어 계속 선무 작가와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미국의 최대 도시 뉴욕에 있는 SB D Gallery에서 화랑 건립 14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 20일까지 한 달여간 탈북자 화가의 그림을 전시한 박설빈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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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rocess of preparing the group exhibition of ‘Pre911/Twin Towers Once Stood’ at SB D Gallery in New York City.
SB D Gallery staffs, Hyeonji Lee (left, Graphic designer) and Zinno Park (right, Director) are holding the miniature simulation that they built before producing the final ceiling high banners.
The exhibition opens on September 11th, 2011 at 4pm.

박설빈 디렉터의 사진.

피날레 전에 소개될 이장욱씨의 사진. 왼쪽 쌍둥이 송신탑 사이에 걸린 달과 오른쪽에 두뚝 솟은 트윈타워의 대조가 정감스럽다. (Photo by Chang W. Lee/The New York TImes)
“그날 이후 인생관이 달라졌지요. 열심히 일하고 살면 되겠지 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안전(security)’을 빼앗겼어요.”
이스트빌리지 SB D갤러리(125 East 4th St.)의 박설빈(사진) 디렉터에게 9·11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사건이었다.
”9월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날을 생각하게 되지요. 뉴욕의 상징이었던 트윈타워는 생명이 없는 건물이었지만, 뉴요커들에게 인생의 한 부분으로 기억되는 상징이 됐어요. 그 트윈타워를 기억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 까요.”
그래픽디자이너자 큐레이터인 그는 미술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2009년 9월 트윈타워를 회고하는 첫 전시회를 열었다. 첫 전시엔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사진가·화가·조각가 등 44명의 작품 154점이 선보였고, 작품집도 출간됐다.
박 디렉터는 피날레가 될 2011 ‘9·11 이전: 트윈타워와 함께 했던 추억(Pre911: Twin Towers Once Stood)’전의 전시작품을 공모한다. 사진·드로잉·회화·조각·믹스드미디어에서 시까지 장르를 망라하고, 트윈타워를 추억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받고 있다.
“이제까지 접수된 작품 중엔 아무래도 사진이 많았어요. 당시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 다락방이나 지하실에 잠재워둔 것을 찾아내 응모한 분들도 있지요.”
전시작품 중엔 박 디렉터의 남편인 뉴욕타임스 사진기자 이장욱씨의 사진도 한 점 선보인다. 뉴저지에서 일몰 즈음에 촬영한 사진 속에서 트윈타워에 반사된 햇빛과 쌍둥이 송신탑 사이에 걸린 보름달이 대조를 이루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55분 경 굉음을 듣고, 트윈타워 위로 솟아나는 연기를 본 이장욱씨는 곧바로 카메라가방을 든 채 세계무역센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촬영한 사진으로 동료기자들과 함께 퓰리처상 속보상을 수상했다. 수상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 뺐다. 이장욱씨는 “이제는 치유의 시간이지요”라고 간단히 해명한다.
피날레 전시는 9월 11일 오후 4시에 개막해 25일까지 계속된다. 응모작은 sb@sbdgallery.org에 접수하면 된다. 212-979-7239.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